이태원 집단감염 사태와 성소수자 혐오에 관하여

date
May 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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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Itaewon-covid19-inf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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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성소수자
summary
이태원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당시 게이 혐오로 인해 게이스북 클러스터에 소란이 있었다. 이에 대한 내 생각.
type
Post
많은 게이스북 계정들이 프로필 사진을 바꾼 걸 봤습니다. 제가 본 건 어떤 유튜버가 코로나19 이태원 건을 계기로 "아웃팅" 영상을 계획중이라는 미심쩍은 카더라 정도였지만 각자가 판단하게 된 제가 모르는 정보와 이유가 있겠지요. 저는 어쩌다 보니 그런 누설의 경우에도 대응하고 버틸 수 있는 상황이라 판단하여 바꾸지 않긴 했는데(그렇다고 제가 제 얼굴 사진을 어디다 가져다 쓰는 걸 허락한 적은 없으니 불운한 오해 마시길), 보다 보니 지금 확진자 분들과 게이 클러빙에 쏟아지는 비난은 역시 방역수칙 내지는 권고 위반이란 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느낍니다.
그렇다면 이건 "커뮤니티"의 문제이기도 할 겁니다. 커뮤니티가 뭔진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허상일지라도, 그리고 사람 만나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운영회의가 전부일 정도로 사회적 관계가 좁아진 지 오래지만(단체 홍보 맞습니다. 구독 좋아요 후원 부탁합니다) 게이 혹은 성소수자로 구성된 어떤 공동체...? 유사종족...? 군집...? 하여간 뭐 그런 것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항시 의식하면서 살긴 합니다.
분명 비난은 커뮤니티의 특성과 커뮤니티 자체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대응에도 우리가 함께 고민할 부분이 존재할 겁니다. 그런 생각 때문이리라 추정합니다. 일종의 그, 혐오에 "빌미"를 제공했다며 확진자들을 나무라거나 "집단 아웃팅"의 책임을 묻는 주장들이 등장하는 이유 말입니다. 이 글은 그런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다 쓰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런 톤은 아니었고요. 쓰다가 인권단체들의 논평을 몇 개 보았습니다. 제가 설명할 수 없으면서도 "커뮤니티"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모든 논평에서 빠짐없이 강조된 연대의 가치가 정녕 절실하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어차피 저는 친구가 많이 없고(아니.. 아싸인 것도 맞지만 페북 친구 말입니다) 이렇게 외딴 섬에서 누굴 나무라봤자일 겁니다. 그런 무용한 일을 하느니 접촉자로서 검사를 받아야 하거나 확진되어 그 뒤에 따라오는 오만 불확정성과 선택과 걱정을 감당해야 하는 만나본 적 없는 커뮤니티 구성원들을 응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고민도 많으시겠죠. 그 고민이 생존의 위기라 느껴질 정도로 무겁지 않길 바라며, 혹시라도 그렇다면 저도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고민하려 합니다. 혹시나 저 개인으로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확진자들에게는 당신의 일상이 변하지 않을 수 없더라도 그 변화가 당신을 위협하는 일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무엇보다 건강을 빠르게 회복하기를 기원하고요. 접촉자로서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분들께는 아무 일 없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접촉자이지만 여러 이유로 검사를 망설이고 있다면, 우선 검사를 받기를 부탁합니다. 검사를 망설이는 이유를 하나씩 꼽으며 쓰잘데 없는 생각이라며 논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도덕적 책무나 사회적 방역을 위한 거시적인 이유를 제쳐놓고라도(물론, 그 또한 고민의 큰 이유이겠지만) 그것이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다 싶어 기어나오는 성소수자 혐오의 타격을 받는 분들에게. 당신이 느끼는 것이 분노와 좌절, 상처, 공포 같은 감정이라면, 저도 이번 상황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행동하길 제안합니다. 우리 안으로 칼을 휘둘러 서로를 상처 입히는 대신 공부하고 방어하고 반박합시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똑똑하고 말 잘하며 항상 노력하여 싸울 수 있어야 하는 게 갑갑할 때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혐오자들에게 항상 말해왔습니다. 문명인이 좀 되어보자고. 커뮤니티가 처한 위기이지만 우리 자신이 언행일치를 할 줄 아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걸 증명할 기회이기도 할 겁니다. 버겁더라도 저는 노력해보려 합니다. 우선은 작고 보이지 않는 것부터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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