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정의당에 기회가 남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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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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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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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녹색정의당 같은 정당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굳이 도움도 안 되는 일을, 굳이 나서서 하는 정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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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첫 날이었나. 술을 마시다 문득 이제는 민주당에 파고 들어가 바꿀 기회를 찾는 게 낫겠다고 말해버렸다. 정의당에 꽤나 진심인 친구는 면밀하게 내 생각의 이유를 탐지했다. 나도 몰랐던 나의 내심은 원내에 머무를 수 없는 정당은 힘이 달리고, 그렇다면 의회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 국면에서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는 굳이 나와 소리를 높여 싸우기보단 정의당의 예정된 쇠락에 임해 자신이 느끼는 우울감을 언뜻 암시했다.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정의당 나이롱 당원 몇 년차지만 제대로 뭘 해본 적은 없다. 심상정의 1분에 대해 이번 총선/대선/지선 때 표를 주는 것으로 빚은 다 갚았으니 우리 사이에 이제 남은 채무는 없다는 선언만 한 세 번 했다. 성소수자로서 한국 정치를 본다는 것은 거스름돈조차 되지 못하는 신세에 익숙해진단 뜻이다. 연탄재처럼 거기 놓여 있다 갑자기 발에 차여 화를 내면, 똥꼬충이라는 비난 또는 사회적 합의가 없으니 니들끼리 알아서 만들어오라는 조롱이나 받기 마련이다. 옳은 말을 하기 힘들면 닥치고 있으라는 것조차 무리한 요구다.
임태훈 소장이 더불어민주연합 비례 경선에서 겪은 모욕이 큰 계기가 되었다. 저런 모욕을 받고도 민주당과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거겠지. 국민의힘이야 말할 것도 없고, 더불어민주당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성소수자를 싫어한다. 내가 성소수자의 권리를 제쳐두고 나의 계급/재산이나, 내가 싫어하는 후진적인 정치집단의 패배나, 어떤 정치인의 흥망에 만족한다면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또한 개인에게 가능한 선택지다. 다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도 많은 슬픔과 원한과 죽음을 이고 졌다. 누구도 나에게 자신 몫의 감정과 서사를 얹어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항상 생각한다. 게이가 아니었더라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또 그 무슨 이름의 정체성이 아니었더라면 겪지 않았을 수도 있는 슬픔과 원한과 죽음이란 게 나를 돌아버리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정치인이 받은 탄압이 그런 것처럼, 나에게는 이 정당한 사유 없는 봉변이 다른 모든 데서 다 포기하더라도 가장 마지막에 참을 수 없는 지점이다. 그건 그냥 옳지 못하다. 끝내야 한다.
성소수자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정당이 많이 없다. 아니, 숫자로만 보면 그래도 좀 된다. 단지 그들이 점유한 정치적인 힘이 다 합쳐도 많지 않을 뿐이다. 그 중 누군가는 더불어민주연합의 우산 아래 들어가 있으니 논외로 하고, 안 그런 정당에는 좀 무관하지만 뽑기 싫은 사유가 있기도 하다. 그렇게 소거법으로 남은 정당이 정의당과 녹색당이고, 두 당은 선거연합정당을 꾸렸다고 한다. 이번에 녹색정의당에서 내세운 비례대표에는 꽤나 혹할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안동에서 18% 득표한 녹색당 허승규나, 이상한 변호사 권영국이나, 대기과학자 조천호 박사나... 당의 메시지도 기본적으로 마음에 든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필요한 말을 한다는 그 태세가 꽤나 멋지다. 여기서 녹색정의당에 비례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공식적이고 우아하게 긍정적인 여러 이유를 굳이 늘어놓진 않겠다. 다들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변명하고 넘어가지만, 사실 그게 중요한가? 하는 마음이 있다. 나에게 가장 솔직한 답은 이렇다.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숨기고 살 게 아니라면 지금 또는 장래에 성소수자인 나를 긍정하는 정당이 간절히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정당의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 그래, 정의당의 생명이 경각에 달했다. 그리고 나는 허비하게 될 공산이 높은 표를 굳이 녹색정의당에 주기로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 적어도 나는 성소수자인 나까지 소중하게 대해야 하니까.
이번까지만이야. 아마도 네 번째가 될 악당의 단골 대사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투표용지를 찢는 심정으로 결심한 나에게, 이번 총선 국면에서 가장 의외의 경험을 안겨준 사람은 우울해 했던 진성당원 친구도, 신선하고 역량있는 비례대표 후보들도, 심지어 장혜영 의원조차도 아니었다. 나는 그를 만나본 적이 없다. 이름은 안다. 얼굴은 모른다. 정의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니다. 생업이 따로 있는 것 같다는 정도만 안다. 서울시당에서 녹색정의 서포터즈로 나를 맡아 계속 연락을 주신 동료 당원이다. 당원들의 반응이 따뜻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날씨나 신변잡기를 조금 언급하면서도 절제되고 조심스러웠던 메시지에서 자원봉사중일 그의 고충을 좀 느꼈다. 나는 그의 메시지에 단답을 하거나, 간단한 요청에 응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거나, 바쁠 때는 메시지에 엄지손가락 따봉만 남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꾸준히 연락해주었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가능한 노력을 하자고 말했다. 오늘 마지막이 될 메시지를 받고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그간 너무 감사했고, 총선 이후에 이어질 정치의 국면에서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고민해보겠다고 말해버렸다. 이 답 없는 지는 싸움에서도 굳이, 크게 표나지 않는 일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묘한 위안이 되었다.
나에게 정의당은 그런 정당이었다. 거대 양당이 확립한 이론에 따르면 도움도 되지 않는 성소수자를 보듬어, 옳은 말과 옳은 일을 하겠다고 굳이 나서는 정당. 그것만으로도 지지할 이유는 충분했다. 당신이 성소수자라면, 그리고 내일 행사할 표가 남아 있다면, 녹색정의당에 비례 표를 주는 걸 진지하게 고려해달라. 당신이 성소수자가 아니라도 분명, 당신에게도 녹색정의당 같은 정당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굳이 도움도 안 되는 일을, 굳이 나서서 하는 정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