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움 논평] HIV/AIDS 인권운동과 초국적 제약회사의 긴장관계를 함께 고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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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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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queer-parade-insults-HIV-activ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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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성소수자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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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서울퀴어문화축제 길리어드 트럭 비판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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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운영위원회는 2022년 서울퀴어퍼레이드 트럭 배정에 관하여 최근 SNS상에서 논의된 모든 논점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휠체어 행진의 안전과 상징성을 고려할 때 전장연이 트럭 참여단위로 선정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A단체도 부여받은 트럭을 왜 B단체는 받을 수 없는지 비교하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서구 국가 대사관이나 다국적기업의 참여는 핑크워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를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나, 퀴어퍼레이드가 가지는 운동, 문화, 명절로서의 다채로운 의미를 고려할 때 이들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퀴어문화축제가 자본의 논리에 잠식되었다거나 전복적인 의미, 그러니까 "초심"을 잃었다는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동료들은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함께 해온 믿음직한 동지들이며, 우리는 이들의 선의와 노고를 인정하고 감사히 여깁니다. 우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선의와 노고를 인정하는 것과, 2022년 서울퀴어퍼레이드 구성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병립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믿습니다. 다움이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아래 성명에 연명한 것은 이 믿음 때문입니다.
한국의 HIV 감염인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투쟁을 해왔습니다. 국가가 나서 국민의 건강을 돌보아야 한다고 요구하며, 원색적인 저주에 가까운 편견에 대응하는 일 외에도, 경제적 논리로 인간의 생명을 재는 초국적 제약회사와의 투쟁은 HIV/AIDS 인권운동의 핵심 과제였습니다.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내성으로 인하여 기존에 쓰던 약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감염인에게 유일한 희망이 된 신약이 비현실적인 약가 책정으로 인해 도입되지 않던 때, 누군가에게는 남은 생명이 타들어가던 시간이 초국적 제약회사에게는 얄팍한 금전적 가치로 환산될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HIV/AIDS 인권운동이 가진 역사이자 핵심적인 문제의식 중 하나입니다. 물론 초국적 제약회사는 치료를 위한 약을 생산하여 판매합니다. HIV/AIDS 인권운동이 이들을 절대적인 악으로 상정하고 무작정 대립하거나 배척할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초국적 제약회사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얄팍하기 그지 없는 수치로 환산되어 무시당하는 경험으로 인해 이 관계는 편안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초국적 제약회사는 특허권과 높은 약가라는 장벽을 설정하여 감염인과 모든 이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초국적 제약회사를 감염인의 치료에 필요한 요소로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경계하고 비판합니다. HIV/AIDS 인권운동이 초국적 제약회사와 맺는 관계에는 이러한 긴장이 서려 있습니다.
서울퀴어퍼레이드에는 한정된 수의 트럭이 세워집니다. 그 절차의 이름이 허가이든, 선정이든 모든 신청자가 트럭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고 또한 당연합니다. 트럭 참여단위를 선정하는 과정이 존재하는 이상, 그 결과물에는 무의식적일지라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재현하는 퀴어와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상(像)이 맺힙니다. 우리는 HIV 치료제를 판매하는 초국적 제약회사인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가 트럭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꽤나 강력한 상징성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의문 없이, HIV/AIDS 인권운동이 가지는 문제의식과 쌓아온 긴장관계를 소거한 채로, "길리어드가 2022년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트럭을 운영했다." 단 한 줄만이 남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가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앞선 성명에 답하며 이 문제의식과 긴장관계에 대한 입장을 밝혀, 이 한 줄에 첨삭을 달았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답변은 없었기에, 우리는 2022년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께 요청합니다. HIV/AIDS 인권운동이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하여 제기하는 의약품 접근권에 관한 문제의식과, 그간 형성해온 긴장관계를 여러분이 덧붙여주세요.
- 2022년 서울퀴어퍼레이드에 HIV 치료약 공급사인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가 트럭 단위로 참가한 점에 대한 HIV/AIDS 인권운동의 문제의식이 있음을 기억하고 알려주세요.
-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준비하는 행진 당일 및 이후의 액션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주세요.
2022.07.15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운영위원회
내가 초안 잡고, HIV/AIDS 인권운동의 맥락에 조언해 줄 호림에게 조언을 구했으며, 기용과 함께 첨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