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검은 가장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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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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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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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눈이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전 애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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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그를 피해 도망치듯 이 나라를 떠났었다. 떠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좋다는 마음으로 절대로 떨어질 일 없는 학교에 교환교류를 신청해서. 오늘 눈이 오는 걸 보니 딱 이맘때쯤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기억나는 것들은 순간의 잔상과 감정의 색 같은 것들 뿐이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학기 중에 네 시간짜리 대수술을 결행하고 퇴원한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날 면접관이 더 좋은 학교도 갈 수 있는 사람이 왜 이 학교를 지원했냐 물어보아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답변을 지어내야 했던 순간, 18학점 정신 없는 학기를 서둘러 마무리짓고 1주일만에 한 학기 동안 살아낼 짐을 꾸리며 암담했던 그 심정, 이민가방의 투박하고 싸늘한 촉감, 착륙 직전 공항 근처의 공장지대를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비행기 창 너머 수북이 쌓인 눈 사이로 보이는 검은 지붕 가장자리로만 건물의 위치를 어림할 수 있었던 그 도시의 첫인상, 그리고 그 때의 암담함 같은 것들. 그 암담함조차 우선은 다행스러웠다. 당장 짓눌려 부서질 것 같지 않은 곳에 왔다는 반가움에 이런 도시라도 정 붙이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지경에도 나는 온기를 바랐던 것인가. 하기야 이 험한 나라를 뜰 생각만 하며 돈을 벌던 그의 친구는 한 학기 동안의 외유일지언정 진심으로 나를 부러워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주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냐며, 그가 쥐어주었던 봉투는 얄팍했지만 센스도 없게 주둥이를 단단히 봉해둔 끈적이가 오래 남았다. 기숙사에 입사하자마자 둘째 서랍 가장 안쪽에 방치된 그 봉투의 끈적이가 나를 끊임없이 비웃었다. 거 봐라 너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고고한 척 혼자 잘난 놈이지만 결국은 먹고 자고 싸야 사는 거추장스런 육신을 가졌다는 점에선 우린 그리 다르지도 않다고, 그 곳에 간대서 네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으리란 착각이 얼마나 얄팍한지 느껴보라는 양 봉투는 만질 때마다 손에 끈덕지게도 붙어댔다. 결국엔 그 부분에만 손때가 묻어 하얀 봉투 가장자리 새까만 얼룩으로 남았다. 뜯지 못한 봉투 안에 얼마나 들었는지는 알 길 없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라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충동적으로 검색해 찾아간 게이업소는 bar라고 했지만 생각했던 그런 곳은 아니었고 시원시원한 할머니 레즈비언과 갓 스물 된 페어리 게이들이 어색하게 어울려 노는 커뮤니티 센터였다. 하필이면 내가 듣는 수업 교수인 J를 만났는데 과목이 과목인지라 우린 역대 일본 수상들을 욕하거나 오타쿠 컬쳐, 한국과 일본의 도심이 보이는 미묘한 공통점과 차이점 같은 걸 이야기하면서 아주 친해졌다. J는 국경을 넘어가서 성전환 수술 받은 이야기를 하다 블로그를 알려주었다. J의 집에 초대 받아 남편의 애장품인 골동품 차에 조심조심 나를 우겨넣은 채 사진을 찍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하면서 단과대 로비에서 신문을 읽고 있으면 J가 지나가면서 걸쭉한 목소리로 'hi'라고 인사를 건네는 게 일과처럼 되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한국인 교환학생들이 트랜스젠더 교수와 이상하리만치 친하게 지내는 나를 괴이쩍게 여겨 뒷말이 돌았다. 소문을 정리하면서 내가 뒤집어 쓴 정치적 올바름에도 색이 있다면 분명 하얀 색이었을 것이다. 검은 가장자리는 J와 함께 J의 수업을 듣는 풋볼러의 섹시한 허벅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도나 감 없는 한국인들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살짝, 빛났을 것이다.
그리고 A. 내리는 눈을 뚫고 비행기가 겨우 착륙한 공항에서 나를 픽업한 어시스턴스. 그와 그의 친구들이 사는 아파트에서 술 먹고 농담 따먹다 새벽 세 시쯤 있었던 그의 커밍아웃은 정말 뜬금 없었다. 그 때가 공항 포함해서 세 번째 본 거였는데. 영어로 하는 커밍아웃은 'By the way, I'm gay' 밖에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은 모두 A의 탓이다. A가 게이일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것부터가 내가 얼마나 꼭 닫혀 있었는지. 더 신기한 건 우리가 데이트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차가 있으면 주말에 싸구려 맥카페 한 잔씩 사들고 교외로 2-300킬로미터 달리는 것도 충분히 데이트 일정이 될 수 있었다. 어느 게이 영화, 어느 드라마에 나온 장소, 어느 가수가 나고 자란 곳 같은 데는 서울에 비해 한참 한적한 그 산골에 어찌나 많은지. 바에 설치된 로데오 기계 위에서 죽어라 버텨 땀범벅이 된 A가 한달음에 달려와 끌어안고 키스했을 때 어찌나 달콤하고 짜릿했는지. 한국에 버리고 도망온 모든 것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수업을 한 주 통째로 째고 A와 몬트리올로 날아가서 Van Houtte에서 커피 한 잔 하는 시간도 아껴가며 전투적으로 놀았다. 점심만 두 끼를 먹고 쇼핑하다가 참지 못하고 게이 거리에 갔다. 영미권 프랜차이즈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몬트리올에서도 게이 거리엔 Tim Hortons가 무지개 깃발을 걸고 살아남았다고 낄낄댔다. 밤에는 한국에서도 제대로 누려본 적 없는 게이들 특유의 도락을 아무 걱정 없이 즐겼다. J는 자기 수업을 빠지면서 몬트리올에 있는 나에게 수업 쉬는 시간에 재미있게 즐기고 있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분명 이건 꿈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내 삶에 깊숙히 들어온 J나 A가 결국 학기가 끝나고 나면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되어 일기장 한 페이지의 등장인물이 될 뿐이라는 사실이 그냥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J는 몰라도 A와 나는 유예된 단호한 쓴 맛을 한 번은 보아야만 했다. 여느 때 같이 bar hopping 중에 문득 말해버리고 말았다. 어디가 그렇게 좋다고, 꼭 가봐야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A에게 거기까지 갈 시간은 없을 것이라고, 돌아가야 한다고 해버렸다. 어색한 침묵이 있고 나서 우리는 아무 일 없이 15불에 보드카를 무제한 샷으로 제공하는 클럽에 입장했지만, 그 날 나는 일찍 나왔다.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면서 그 어감에 내가 지레 놀란 탓이다. 언젠간 돌아가야 한다. 내가 두고온 모든 것이 나를 따라잡고야 말 것이다. 쌓인 눈에도 불구하고 확연히 드러난 검은 가장자리처럼.
교환학생 답잖게 열심히 공부했기에 폭풍 같은 기말고사 기간 동안 밤을 여러 번 샜지만, 중간고사 때완 달리 A의 집에서 좁은 책상을 공유하는 일은 없었다. 스트레스가 목 끝까지 차오른 나머지 별 것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120명 수강생 전부에게 이메일을 돌려버리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새삼 놀라웠다. 전쟁 같은 시험기간이 끝나고, 아예 학생회에서 판을 벌인 술판에서도 A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기말이 끝나고 졸업만 남긴 A에게서 메시지가 왔지만, 만나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다시 한국에서 기다리는 내 현실의 포로가 되어 체념한 채 놀았다. 추운 그 곳에도 봄이 온지라 잔디밭에 이불 깔고 세 시간 동안 낄낄대기도 하고, 그러다 의기투합한 아이들과 차를 렌트해 근교 국립공원에 다녀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히 내가 이미 다녀온 곳들이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든 여행이었다. 어느 뉴에이지 음악가가 곡을 쓴 호수, 그 곡을 피아노로 칠 줄 안다고 하니깐 A는 들려달라고 했었다. 학교 오케스트라와 파이프오르간의 협연을 들으러 가서도 파이프오르간을 가리키며 저거로 쳐달라고 떼를 쓰며 나를 웃겨 죽일 뻔 했었다. 운전하는 내내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뭐 그런 것들. 지도에 작게 인쇄된 글씨가 자꾸만 뭉개졌다. 밤길이 어두워서였겠지. 답장하지 않은 길지 않은 메시지를 다시 읽으며 계속 전화기를 만지작거렸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가려보았자, 선연히 모습을 드러내고 마는 검은 가장자리를 당최 어쩔 수 없잖은가.
해가 쨍 나서 잔디밭에서 광합성하던 게 이틀 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무릎까지 쌓인 날이었다. 퇴사신청 줄은 길기만 하고 짜증났다. J와는 이미 전날 마지막 오피스 아워를 가지고 기말 레포트 앱스트랙트를 확정하고 진한 이별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한국인 교환학생들과는 어차피 한국 가면 실컷 먹을 소주 한 병을 10달러 주고 벌벌 떨어가며 나눠 먹었다. 짐을 싸면서 내가 샀던 모든 가재도구를 기숙사 플랫메이트들에게 분배하고 버릴 건 버렸다. 세상에, 심지어 프린터도 샀었다. 택시를 잡을 수 있을까. 콜 택시 전화번호를 뒤져가며 전화를 했지만 받질 않는다. 어차피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나보다 퇴사를 늦게 하는 아이들과 아쉬움을 의연하게 달래며 사진 파일을 교환하거나 했다. 한 학기 동안 스카이프와 페이스북으로 돈독히 이어져 있으니 서로 소식을 알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지만, 이미 알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만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달랠 길 없는 애잔함이니 보이지 않는 편이 나은 것이다. 사진파일과 한국에서 많이 사온 책갈피 같은 것에 마음을 담는 수밖에. 지루할 줄 알았던 퇴사날 기다림도 오히려 짧았다. 슬슬 가봐야 할 시간이어서 택시 회사에 전화하려고 충전금이 얼마 남지 않은 선불폰을 꺼내는데 부재중 전화가 두 통 있었다. A다.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가 한 번 더 왔다. 받았다. 태워주겠단다. 오늘 퇴사한다고 말한 적 없는데. 어시스턴스 오피스에 전화까지 했단다. 눅진한 마음의 잔 빚, 갚을 길 없는 부채가 생각이 났다. 그럼 고맙게도 좀 부탁하겠다고 했다. 1층이니 바로 내려오란다. 라임색 차에 기댄 A가 보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부러 절차가 덜 끝난 척 로비에서 서성이면서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조수석 커피 받침대에는 내가 사랑했던 Tim Hortons의 Double Double이. 건드리면 손이 아니라 마음이 데일 것 같아 마실 수 없었다. 별 말을 하진 않았다. 졸업 축하한다. 눈이 이렇게 와서 비행기는 뜨겠냐. 너는 오는 날도 눈이 오고 가는 날도 눈이 온다고, 이 곳의 모진 날씨 한 번 제대로 겪고 간다고, 처음 공항에서 만나 기숙사로 태워주던 그 날 이후로 정말이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런 대화를 했다. 눈 때문에 삼십 분 정도 걸릴 길을 두 배 걸렸는데 그 시간은 어찌나 짧은지. 왜 비행기를 이 시간에 잡았을까, 왜 전날 연락하지 않았을까 때늦게 후회했다. 하지만 전날 만났다 해도 무슨 말을 할 수나 있었을까.
국제선을 잡아 타기엔 빠듯한 시간이었다. 차라리 놓쳐버렸다면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이민가방과 캐리어 하나 체크인 하는 것까지 도와준 A를 출국 게이트 앞에서 새삼 마주 보았다. 탑승안내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영영 그를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다. A와 나는 성석제의 소설에 나온 것처럼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 보았다. 고마웠다고, 몸 건강히 잘 지내라고 잇새로 가까스로 내뱉었다. 그리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그를 먼저 보냈다. 유리문 너머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건 검은 코트 가장자리 정도였다. 그러니까 내가 알게 된 건, 마음이니 인간이니 연애니 하는 몰캉한 것들은 대개 흰 눈에 파묻힌 검은 가장자리 같단 거였다. 묻어놓는다고 해서 검정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온통 검은 것도 아니다.
그 다음 해 서울에는 이례적으로 3월 말에도 폭설이 내렸다. 태어나서 눈 처음 본다는 싱가폴 교환학생의 쇼핑을 도우며 묵묵히 운전만 하던 A를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이 또한 검은 가장자리 같은 것이다. 눈이 녹으면 온통 검어지겠지만, 녹는다는 건 기약도 없으니까. 가슴아팠던 일도 어떻게 지내다 보면 훈장처럼 꺼내 닦아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오늘이 똑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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