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나가 죽었다.

date
Jul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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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ary-chapel-g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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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summary
이요나가 죽었고 나는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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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말을 아꼈을테지만 취했으니 굳이 써본다.
이요나의 부고를 들었다. 탈동성애한 전직 동성애자(자칭)이며, 무려 갈보리 채플 교회(ㅋㅋㅋㅋ)의 목사로서 탈동성애와 전환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던 사람이다. 딩-동! 더 위치 이즈 데드! 로 끝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겐 별로 그렇지 않다.
그냥 흔한 포비아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던 그를 트위터하는 사람들이 한 조각이나마 기억하게 만든 건 온갖 웃픈 밈들이었다. 탈동성애 했다면서 누구보다 (아무도 안 자줘서 삐뚤어져 버린) 게이 같았던 그의 말말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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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를 단지 밈으로 소비해도 되는가? 모르겠고, 아마 아닐 것이다. 그는 전환치료를 간판으로 내건 교회를 운영했다. 뭐 본인도 끼를 다 떨쳐내지 못한 마당에 누굴 고칠 수 있었겠냐마는. 전환치료는 수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보수적인 심리학회들조차 학을 떼며 이건 하지 마세요 사짜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설령 전환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동원했던 수많은 ‘탈동성애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 속에서 이요나를 믿었기에 자신이 카메라 앞에서 말한 바를 진심으로 믿었겠지. 이요나는 그들의 삶을 책임졌나? 아마 아닐 것이다. 무엇 하나 알지 못하지만 이건 신뢰할 수 있다. 그는 본인의 삶조차 버거워 했을 거니까.
한편으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어놓고 이요나 목사 본인은 꽤나 - 심지어 성소수들의 - 관심을 즐겼다. 퀴어문화축제 측과 남대문 경찰서에서 줄서기 대결을 하면서, 이 쪽으로 넘어와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같은 식으로 고나리했단 얘기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게 뭔데 이 씹덕아.
이요나의 실상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는 뭐 탈동성애가 진정한 신념 같은 거라서 그 길로 나아간 사람은 아니다. 내 생각에 그는 그냥 관심을 얻고 싶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인정과 자신이 소속될 곳을 바랐고, 그걸 기민하게 찾아서 청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다. 나는 그가 자신이 했던 말을 반이라도 믿는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는 그냥 관심을 즐기는 게이 그 자체였다. 너무 그래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게모창’ 같은 밈을 만들 수는 없다.) 더 이상 게이로서 관심을 받을 수 없게 된 사람이, 게이임을 포기(했다고 주장)함으로서 관심을 끌고 싶어한 것이 그의 본질 아닐까?
내가 이요나를 보면서 느끼는 가장 첫 감정은 공포였다. 무서운 것은 그나 그의 말이 아니다. 그냥 나는, 저게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공포스러웠다. 그래서 그를 동정하고 연민했다. 거식하기 그지 없는 그의 말들을 웃어 넘겼던 것은 그래서였다. 그러면 좀 덜 끔찍할까봐. 그리고 그를 연민하는 나 자신이, 그리고 아직 그를 연민할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하는 나 자신이 징그럽다. 탈동성애 깃발을 들고도 ‘리애마마 동성애 탈출’(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이름을 ‘리애마마 동성애 탈출’로 오해하곤 한다)이란 제목의 책을 써서, 트랜스젠더/게이바 몇 개를 운영하고 일본 시장까지 진출했던 good auld days를 아련한 말투로 추억하는 미래가.
늦었지만 이 글은 내가 이요나에게 바치는 부고(obituary)다. 그의 명복을 빌진 않는다. 다만 그가 반의 반 정도 믿었던 것처럼 사후에도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부디 끝없는 속죄의 길을 걷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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